단 한 번의 여행
사람은 인격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관계가 틀어지면 힘들어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힘들게 하면 ‘재수 없다’고 내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날마다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석을 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진주로 만들고 싶어도 너무 아프다. 가족이라 더 아프다. 곁에서 봐도 힘들고 멀리 떠나도 괴롭다. 도저히 해석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해석을 들으려 한다. “왜 이러시느냐고……”
아버지와 엄마
저자는 “엄마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느낀다.(268쪽)”고 말한다. 엄마는 사랑, 희생, 따뜻함을 나타낸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있으나 마나 한 느낌이 많다. ‘끔찍한 괴물, 차라리 없어지면 좋을 사람’일 때도 있다. 잊고 돌아서면 그만인 남남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석하려 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해한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서 그럴 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까이 대하면 “힘들고 어렵게 산 게 무슨 대수야? 왜 나를 힘들게 하는데……” 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비슷한 상황에서 살았다면 갈등이 적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그러나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부모세대는 가난을 몸으로 겪어냈다. 사랑을 표현하는 세대도 아니었다. 밥만 먹여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녀세대는 밥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을 원한다. 말로 해도 이해하는데 왜 소리 지르고 때리는지 몰라 답답해한다. 주려는 것과 받으려는 것이 다르니 다툼이 생긴다.
대화로 다툼을 해결하면 좋겠지만 아버지는 대화를 어려워한다. 가난을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며 자식을 위해 희생했는데 머리 컸다고 또박또박 말대꾸 한다고 받아들인다. 집안의 기둥에서 점점 뒷방어른으로 바뀌어 가면서 화를 낸다. 자책하다가 자녀에게 폭발한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분노한다. 세파를 견디며 묻어둔 분노를 자녀에게 쏟아버린다. 소리치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집 밖으로 쫓아낸다. 이해하려고 시작한 대화는 분노와 좌절로 끝나기 일쑤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무작정 떠나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표지 귀퉁이에 적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세계를 돌거나 히말라야 구석진 곳을 여행하고 쓴 책 같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기 같기도 하지만 저자는 다른 여행을 한다. 23살 아가씨가 아버지를 피해 옷장 안에 숨었다가 들켜 두들겨 맞고 한밤중에 맨발로 쫓겨나서 시작한 여행이다. 무조건 한국을 떠나려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 찾다가 태국에 간다. 아는 사람도, 잘 곳도 없으면서 아버지 싫다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가난하고 무더운 태국에 덜컥 가서 어쩌자는 건지……
머물 곳도,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에 여행사 직원이 전화번호를 하나 준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지라 늦게 가서 놓치고 태국에서는 전화도 안 된다.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저자가 가진 번호를 안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태국 우돈타니 선교사 집이다. 바쁜 여름 동안 선교사 자녀 둘을 돌봐줄 보모 겸 한국어 선생으로 지낸다. ‘우연’일까? 극적인 안내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낫거나 실패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가씨가 태국으로 도망가서 버티며 지낸 이야기다. 하나님이 안내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비극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는 ‘단 한 번의 여행’이 맞다. ‘하나님의 놀라운 우연’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상처와 위로가 부딪치며 생각에 생각을 낳는 이야기다.
여행과 사람
가슴에 암덩어리가 있는 사람도 피부에 가시가 박히면 가시와 씨름하느라 암을 잊는다. 가시가 빠지면 암이 느껴진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가시에 찔리지 않아도 되는 곳에 오자 암덩어리가 느껴진다. 고통스러운 지난날이 자꾸만 생각난다. 힘들어하는 엄마, 어색해진 동생과의 관계를 되짚는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단번에 막힌 담이 뚫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낫지 않는다.
여행은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문제에서 떠나 생각하게 한다. 여행하면서 계속 아픈 상처를 떠올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고는 태어나던 때를 생각한다. 아이 지우고 아빠와 헤어지라며 병원까지 데려간 고모를 피해 도망간 엄마가 남해 어느 시골에서 방바닥을 긁으며 수 시간의 산고를 견디고 자기를 낳았다. 홍콩 게스트하우스에서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운다. 태국에서 달을 보며 아빠와 가족 여행한 일을 기억한다. 행복했던 날 지나고 아빠가 사업에 망하고 쫓기고 도망하고…… 20살 되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았는데, 예수가 ‘죽음’을 이겼다는 말이 좋아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다시 절망하고…… 아파하고 떠올리고 쏟아내고 무작정 걷고 사람을 만난다.
이보다 더한 아픔을 겪은 사람도 있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버티고 견뎌내며 살지 않은 사람 없다. 그러나 낯선 타국,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시험 받는 공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과정을 기록한다. 내면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글을 만나서 반갑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다. 기가 막힌 때에 만난 안내원 외에도 저자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으면서도 맑은 웃음을 보이며 사는 아이들!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도왔다가 라오스에서 쫓겨나 태국에 난민으로 쫓겨 온 몽족 난민을 만난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은 돌아가면 죽는 곳으로 다시 쫓겨 간다. 태국이 그들을 추방하기 때문이다. 방콕의 유명한 매춘거리에서 만난 16살 까니카! 에이즈 고아원에서 죽어가는 아이,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견뎌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일어선다.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일어나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딱 한 명을 고르라면 여행사 직원을 최고의 안내원으로 뽑겠다. 무작정 떠나는 상처 받은 영혼에게 선교사 전화번호를 줬다.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지 비행기 티켓도 왕복으로 끊어줬다. 저자가 돌아올 때를 딱 맞춘 6개월 오픈 티켓!
변화
저자는 지금 태국에서 산다. 우돈타니에 선교활동 하러 온 정환(저자의 이름처럼 가명일 것이다.)과 결혼하고 태국에 왔다. 남편은 번역하고, 저자는 인터넷 소설을 쓰고 있다. 정환과 결혼하고 아빠 곁을 도망쳐 나온 건 아니다.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 견디며 싸우고 싸웠다. 아버지가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면 예전처럼 옷장에 숨지 않고 맞섰다. 또 때리면 그 길로 나가버릴 거라고도 했다. 자기 생각만 하며 안으로 가라앉을 때는 아빠에게 맞서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간 상처는 곪아 자신을 죽이고 상대에게도 악취를 풍겼다.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생각을 말하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의견이 달라 싸우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다시는 아버지 만나지 않으면서 ‘나는 용서했다. 안 보니 편하다’ 하거나 ‘나는 용서 받았다. 당신도 용서 받아라.’라고 해도 사실은 용서하지 못해서 끙끙대는 거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죽이고도 태연히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고 말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혼자 적을 쓰러뜨리거나 적 앞에 엎드리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십자가를 대가로 치러진 선물이다.
이 책은 <복음과 상황>에 연재되었다. 잡지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읽었다. 책으로 읽을 때보다 좋았다. 다음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생각을 할지 두근거리며 한 달을 기다렸다. 책 한 권으로 단숨에 읽으니 긴장감이 덜하다. 저자가 오래도록 견디며 진주로 만든 고민을 단숨에 읽어서 그런가 보다. 영화 한 편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휘리릭 본 것 같다. 천천히 읽어야 한다. 소설 읽듯 읽지 말고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이런 생각 하는데……’ ‘아, 이랬구나!’ 하면서 읽어야 한다.
‘용서’를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한다.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상처 받고 배신당하고 관계가 깨져 몸부림치는 분에게 추천한다. 맞서 싸우지 못해서 속으로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문제를 가진 분에게 추천한다.
“글은 억울한 사람이 쓰는 거다. 무서워서 말할 수 없었던 사람, 두려워서 숨어야만 했던 사람, 감정이 체한 사람, 가슴이 곪아 고름을 품고도 뽑아내지 못했던 사람이 기어이 ‘쓴다!’”(202-203쪽)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가 한 일을 잊어주거나 덮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일그러졌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포기하지 않고, 뒤돌아서지 않고, 사랑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일이다.
아버지와 씨름한 만큼 나도 변했다. 우리 사이에 억눌린 분노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었다면, 상처를 이야기하고, 아프고 화난 만큼 울어버리고,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 순간들이 서로의 가슴 안에 박혔던 독기와 가시를 하나씩 빼주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도 나도 고집스럽고 한심한 인간들이다.” (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