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 쓰는 책/아이와 글을 써요.

아이 마음에서 좋은 글을 길어내려면

책뜰안애 2020. 12. 20. 19:28

아이 마음에서 좋은 글을 길어내려면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 집에 가정방문을 갔었는데, 할아버지가 계신 줄 몰랐다.
아이 마음에 슬픔이 차있는 줄 알았지만, 이런 마음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지만, 난 아이 글을 사랑했다.
2018년 담임을 하면서 12월에 이 글을 만났다.
그 뒤로 가끔 네 글을 보여줘!” 하며 기대하고 기다렸다.

2019년에 할아버지의 침대를 만났고, 올해엔 할머니 호박죽을 만났다.
아이는 해마다 한 번씩, 삼 년 동안 나를 글로 울렸다.
내년에 중학생이 된다. 가끔 연락해서 글 달라고 졸라야겠다.
어쩌면 아이가 작가가 될 수도.
난 작가가 된 아이 글 읽을 때까지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다.

----------------------------할아버지의 눈
변다인

요즘 난 몹시 바쁘다.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내일 베트남에서 오는 외삼촌 데리러 인천공항 간다. 내가 동생들이랑 할아버지까지 다 책임져야 한다. 할아버지는 눈이 잘 안 보이신다. 며칠 전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그 뒤로 잘 안 보이신다. 안 보이니까 길을 익히려 자꾸자꾸 나가신다. 나가는 위치도 모르신다. 할아버지가 나가고 스스로 못 들어오신다. 우사(소 외양간) 가셨다가 내가 불러서 겨우 들어오셨다.

할아버지가 하도 안 되니까 내가 창고에 쓰러져 있는 지팡이 하나 들고서 할아버지한테 드렸다. 할아버지는 이제야 좀 덜 불편한 듯 지팡이 짚으면서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오신다. 지팡이 위치랑 신발 위치까지 알아두려고 노력하신다.

할아버지는 길 외우러 또 한 번 나가신다. 별 일 없겠지!’ 하면서 집에 있는데 1분이 넘어도 할아버지가 문 앞에 서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신발이 짝짝이다. 한 짝은 맞는데 한 짝은 작고도 작은 분홍색 내 슬리퍼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상한 듯 출발하지 않으셨다. 불안한 마음에 할아버지를 따라다녔지만,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며, 집 못 찾으면 소리 지른다!’ 하시며 우사로 가셨다. 불안하긴 했지만 집으로 들어왔다. 1분 뒤에 밖에서 다인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집 반대편, 쓰레기 태우는 곳에서 여기가 문이냐?” 하며 계셨다. 나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문까지 안내했다.